108 미술_다비드상
1501년 피렌체 공화국은 대성당 정문에 세울 다윗 왕의 조각상을 제작하기 위해 미켈란젤로를 고용했다. 원래 다른 예술가에게 조각상 제작을 의뢰했는데 값비싸고 거대한 대리석을 구입해 놓고 대략적인 구도를 잡은 후에 그 예술가가 죽고 말았다. 전해지는 말로는 미켈란젤로가 '망쳐진' 대리석으로라도 기꺼이 작업하려고 한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일을 맡았다고 한다. 1504년 미켈란젤로가 조각상을 완성했을 때 그것을 성당 위 높은 곳에 배치하기에는 매우 비범한 작품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피렌체의 중심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궁전 앞에 세웠다.
르네상스 전성기의 빼어난 걸작 중의 하나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은 골리앗을 공격하기 직전 긴장 된 다윗의 표정을 묘사하고 있다. 승리를 거둔 청년 다윗을 그린 도나텔로의 다비드상과 달리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싸움에 나설 준비를 마친 소년 다윗의 모습이다. 미켈란젤로는 고전 모델에서 영감을 얻어 고귀한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고 한 발에 몸무게를 실은 채 서 있는 아름답고 탄탄한 몸을 조각했다. 거인을 없애기 위해 힘껏 힘을 모아 생긴 근육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도드라진다. 유난히 큰 손과 발은 장차 권력을 얻을 것임을 암시한다.
조르조 바사리가 쓴 미켈란젤로의 전기문 속 일화를 보면 피에트로 소데리니라는 피렌치의 한 시민이 다비드상의 코가 너무 크다고 불평했다. 그의 지적에 미켈란젤로는 코를 깎아 내는 척했다. 그가 작업을 다 마쳤다고 말하자 소데리니는 "이제야 생명을 불어넣었군요!"라고 소리쳤다.
시뇨리아 광장에 다비드상이 처음 세워졌을 때 피렌체 시민들은 조각상에 돌을 던지며 공격했다. 아마도 추방당한 메디치 가문 지지자들이 다비드상을 피렌체 공화국의 상징물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1527년에는 폭동이 일어나 다비드상의 왼팔이 부러졌다. 1873년 비바람으로 손상되고 오염된 부분을 복고하기 위해 다비드상은 시뇨리아 광장에서 철거되었다. 그 후 피렌체에 위치한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안전하게 보관되었고 시뇨리아 광장에는 복제품을 대신 세웠다. 1991년에는 어떤 정신 나간 이탈리아 화가가 다비드상 원본을 망치로 때려 발가락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다비드상은 율리오 2세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완성된 노예상 4점 등 미켈란젤로의 다른 조각품과 함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참고자료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수업 365>
2024.11.29 - [교양수업365]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07 문학_신곡
2024.11.28 - [교양수업365]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06 역사_스페인 종교재판
2024.11.27 - [교양수업365]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05 종교_예수 그리스도
'교양수업365'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10 음악_음악 장르 (63) | 2024.12.03 |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09 과학_오존층 (59) | 2024.12.02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07 문학_신곡 (61) | 2024.11.30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06 역사_스페인 종교재판 (60) | 2024.11.29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05 종교_예수 그리스도 (8) | 2024.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