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유아발달_자아 존중감의 형성
아이들도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숨긴다. 그러나 그 정도는 부모에 비하자면 애교 수준이다. 부모들은 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그 개성은 남들이 좋게 봐 줄 수 있는 수준을 넘지 않는다. 다름 사람에게 이상해 보이거나, 남보다 뒤처지는 개성은 부모들에게 개성이 아니다. 그저 결함에 불과하다. 숨기거나 어서 바꿔야 한다. 하지만 남이 바라는 삶을 살다가는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잃는 법,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할 수 있어야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줄무늬가 생겼어요
카밀라는 남이 말하는 바로 그 모습으로 자꾸 변한다. 바둑판무늬로, 세균으로, 알약으로, 심지어는 방과 가구로 변한다. 카밀라가 변하는 모습은 찬찬히 생각하면 끔찍하고 무서운 이야기다. 실제로 책 속에서 카밀라의 부모는 눈물을 터뜨린다. 하지만 책을 읽는 아이들은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다. 카밀라가 뚱뚱한 알약으로 변하는 모습에는 웃음을 터뜨리고, 방과 하나로 합쳐지는 장면에서는 자기도 방으로 변하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한다. 강렬한 원색으로 이해하기 쉽게 그렸지만 작가의 상상이 워낙 기발해서 아이들은 쉽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다. 그 대신 한 걸음 떨어져 카밀라를 보며 카밀라가 제 모습을 찾기를 응원한다.
남이 바라는 삶을 살다가는 내 모습을 영원히 잃는 법, 내가 바라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진정한 내가 된다.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할 수 있어야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 메시지를 아이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카밀라가 이렇게 고생했으니 너는 다른 사람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쓰지 말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에게 너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너다운 것을 지켜 가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런데 부모인 나는 정말 그것을 원하는가? 아이가 자기의 개성을 지키며 자기답게 살겠다고 격려해 줄 수 있나? 카밀라는 점점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 가다 마침내 자기 모습을 완전히 잃은 뒤에야 자신의 욕구를 인정했다. 용기를 내기 위해서 바닥을 쳐야만 했다. 우리 부모들도 카밀라와 같은 용기를 내려면 아이가 한 번은 제대로 망가져야만 할 것인가? 당연히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를 인정하는 부모가 여전히 많다.
내 토끼 어딨어?
주인공 트릭시는 무척 아끼는 토끼 인형을 자랑하러 유치원에 데리고 갔다. 그런데 친구 소냐도 똑같은 인형을 갖고 있다. 대량생산 사회에서 장난감은 더 이상 개성이 될 수 없다. 사실 어른들도 자신만의 개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우리 자신 역시 여럿 중의 하나로,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로 취급받는 것이 현대 사회의 특징이다. 트릭시와 소냐는 인형을 두고 다투다가 결국 선생님에게 인형을 빼앗긴다.
아이에게 인형은 그저 인형이 아니다. 비슷해 보이는 인형이지만 아이에겐 하나뿐인 존재다. 어느 날 우연히 아이에게 와서 아이와 함께 살면서 인형은 더 이상 상품이 아니게 되었다. 아이는 인형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사랑한다. 아이가 사랑하는 건 결국 인형이 아니다. 인형 안에 채워 넣은 자기 자신이다. 인형과 함께 보낸 시간, 인형을 보며 사진이 품은 생각들을 갖고 있기에 인형은 특별하다.
트릭시의 아빠와 소냐의 아빠는 새벽에 토끼 인형을 바꿔 주려고 브루클린 개선문까지 나간다. 이것은 아이들의 떼쓰기에 대한 굴복이 아니다. 아이에게 토끼 인형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알기 때문이다. 토끼 인형을 찾고 싶다는 아이의 요구를 무시하면 아이는 오해할 것이다. 자기가 다른 아이와 바뀌어도 부모가 크게 신경쓰지 않으리라고. 그래서 아빠들은 잠옷 바람으로 뉴욕 거리를 걷는다. 아빠들의 이런 정성이 아이의 불안을 잠재우고 자기를 믿을 수 있게 만든다. 자기를 믿을 수 있는 아이들은 남 앞에 나서고 남과 어울리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불안이 있는 아이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안심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부모에게만큼은 특별한 존재로 인정 받아야 아이는 안심한다.
이 그림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대량생산 사회, 대량복제 사회에서 자기만의 특별함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세대의 행복이란 단순한 소유에서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더 많은 소유도 아니다. 나의 경험, 내 이야기가 소중하게 여겨질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바뀔 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 욕망은 자주 실패하고 그럴 때면 우리는 절망한다. 아이들 역시 그렇다. 모 윌렘스는 이 불안한 시대에 아이가 행복을 느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림책에서만이라도 아이에게 만족을 주려 한다.
이 글은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에서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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