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미술_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1475년-1564년)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인정받는다. 천재 화가, 건축가, 시인, 공학자 등 그를 지칭하는 말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미켈란젤로는 스스로 건축가라고 생각했다. 미켈란젤로와 개인적 친분이 있으면서 그의 전기를 쓴 조르조 바사리는 미켈란젤로에 대해 "생명이 없는 대리젓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조각가"라 평했다.
미켈란젤로는 1475년 투스카니의 작은 마을 카프레세에서 태어났다. 비범한 재능을 지난 청년 미켈란젤로는 부유한 메디치 가문의 후손 로렌초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모임에 초대되었다. 그 후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에 머물다가 로마로 갔는데, 그곳에서 예수의 시신을 품에 안고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 <피에타>을 조각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 조각상은 1499년에 완성되었다.
1501년 미켈란젤로는 피렌체로 돌아가 유명한 다비드상을 조각했다. 몇 년 후에는 다시 로마로 초대되어 갔다. 이번에는 교황 율리오 2세의 무덤으로 사용할, 실물보다 큰 형상 40개가 장식된 정교한 기념관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교황의 다른 요청으로 공사는 즉각 중단되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를 그려주기를 바랐다. 젊은 예술가였던 미켈란젤로는 프레스코 벽화 경험이 어이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4년 만에 작업을 완성했다.
성당 천장 벽화가 완성되자 미켈란젤로는 교황 무덤 작업을 다시 시작했고 1513년부터 1516년까지 모세 조각상과 죽어가는 노예 조각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교황은 무덤이 완성되기 전에 사망했고 교황 가족은 그렇게 화려한 기념관을 짓는 비용을 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원래 설계대로 작업할 수 없었다. 실망한 미켈란젤로는 그 후 20년 동안 주로 메디치 가문에서 의뢰한 여러 가지 작업을 맡아 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산 로렌초 성당의 메디치 가문 예배당이다.
1534년 미켈란젤로는 로마로 돌아가 시스티나 예배당의 제단 뒤편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그는 서명 대신에 순교자 바르톨로뮤의 벗겨진 살가죽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최후의 심판>이 완성되고 몇 년 후 교황 바오로 4세는 나체 그림리 불쾌하다면서 나체 위로 천을 덧그려 넣게 했다.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 로마 의 도시 계획 사업에도 족적을 남겼다. 1537년 고개 로마의 중심지였던 카피톨리누스 언덕 위 공간을 재설계하는 작업을 의뢰받았고, 9년 후에는 성 베드로 성당 수석건축사로 임명되어 성당의 돔을 설계했다. 불행히도 그는 성 베드로 성당이 완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참고자료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수업 365>
2024.11.22 - [교양수업365]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00 문학_캔더베리 이야기
2024.11.21 - [교양수업365]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099 역사_레콩키스타
2024.11.20 - [교양수업365]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098 종교_하디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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