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년 동안 바다를 품고 살았던 갈라파고스 거북 이야기 '해리엇'
제목: 해리엇
지은이: 한윤섭
그림: 서영아
출판사: 문학동네
"해리엇, 바다가 정말 당신을 갈라파고스까지 데려다 주나요?"
"찰리,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바다가 그립지만 그건 그리운 바다일 뿐이야."
"그럼 바다로 가세요.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요. 너무 오래 기다렸잖아요."
"찰리......"
"해리엇, 우리가 당신을 바다에 데려다 줄게요."
이 작품은 엄마와 헤어져 동물원 우리 안에 고립된 아기 원숭이 찰리가 동물원의 상황을 살 만한 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치밀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 내고 있다. 하지만 아기 원숭이 찰리가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해리엇이라는 백칠십 세가 넘은 갈라파고스 거북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이 거북은 찰리가 고립되어 어려울 때 묵묵히 곁에 있어 준다. 그리하여 정말 절망적인 것은 동물원에 갇혀 있는 상황이 아니라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이 서로 곁에 있어 줄 줄을 모르는 데 있음을 깨닫게 한다. 아기 원숭이 찰리는 이를 통해 자기 정체성과 길을 찾는다.
죽음이 임박하자 해리엇은 갈라파고스 섬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인간들에게 잡혀 겪었던 그간의 끔찍한 일들을, 그리고 바다로, 갈라파고스로 돌아간다는 결코 버릴 수 없는 꿈을 이야기 한다. 찰리와 다른 동물들은 그 꿈을 위해 동물원을 빠져나와 해리엇을 가까운 바다로 데려다준 뒤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간다. 동물원 밖도 인간이 지배하는, 동물원과 다름 없는 곳임을 잘 알기 때문에, 이제 동물들은 서로가 서로의 곁을 지키며 동물원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갈 것이며 갈라파고스와 같은 원래의 삶에 대한 꿈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해리엇이란 진정한 어른이 준 선물이다.
이 작품은 동물을 의인화한 이야기지만 동물에 빗대어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우화나 알레고리를 훨씬 넘어서 감동과 충격을 준다. 그것은 역사성의 무게와 지혜로 다음 세대를 묵묵히 감싸는 해리엇과 같은 진정한 어른이 지금의 인간 현실 속에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인물이라면 인간이 아니라 갈라파고스 거북을 통해 그려 낼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아픔과 그리움을 느끼게도 한다.
불확실한 미래와 역사성의 해체,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를 어렵게 하는 멀티 소비사회는 아이들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함다. 아기 원숭이 찰리에게 그랬듯이, 지금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묵묵히 감싸 안는 동행과 따뜻한 지혜를 통해 정체성의 기반을 다져 주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른들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성공신화를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우리 동화의 풍토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 《헤리엇》은 우리 동화에 주어지는 하나의 작은 충격이다
《헤리엇》의 추천의 말 김진경 작가의 글 중
어린이 문학 《헤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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