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유아 발달_모험을 통한 성장
인간 발달을 연구한 학자들은 아이들의 정신세계는 눈이 쌓이듯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오르듯 단계별로 성장한다고 이야기한다. 한참을 바닥을 기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한두 걸음을 떼더니 이내 걷기 시작한다. 특별히 가르치지 않은 아이들이 글자를 배우는 것을 보면 한두 글자씩 알아가다가 오래지 않아 유창하게 읽어 낸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줄거리를 이해하게 되고, 엄마에게 늘 달라붙던 아이가 한순간에 사춘기로 돌입한다.
성장의 순간에 아이들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부모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이들에겐 하나하나가 중요한 도전이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시도이다. 아이들은 에너지를 집중해 인생의 한 마디를 넘어선다. 이 무렵에는 아픔 아이도 많고 부모와 갈등을 겪는 아이도 많다.
부엉이와 보름달
추운 겨울 보름달이 떠오른 날, 아빠와 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부엉이 구경을 떠난다. 부엉이 구경에선 침묵이 중요하다. 시끄러운 곳엔 부엉이가 오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재잘댔을 아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빠를 따라 묵묵히 산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시커먼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곳. 그곳에서 아빠는 부엉이 소리를 흉내 내며 부엉이를 부른다. 부엉이는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춤다. 이렇게 컴컴한 숲 속이라니, 무섭다. 그러나 아빠와 함께 부엉이를 보러 가는 길.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부엉이. 부엉이와 아이는 서로를 마주 본다. 아무 말도 없이. 아니, 말이 필요 없이. 몇 분 후 부엉이는 떠나고 아이는 아빠에게 안겨 집으로 돌아온다.
성장이란 자신이 하는 것. 부모는 그저 옆을 걸을 뿐이다.
아이는 어느 정도 컸기에 비로소 부엉이 구경을 나갈 수 있었다. 부엉이 구경을 나가려면 추위를 견뎌야 하고, 무서움을 견뎌야 하고, 침묵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부엉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아이가 자랐을 때 아빠가 비로소 부엉이 구경에 데리고 나선다. 하지만 아이를 돕지는 않는다. 그저 앞서 걸을 뿐 아이 손을 잡거나, 두려움을 달래 주지 않는다. 심지어 말도 걸지 않고 조용히 스스로 걷도록 한다. 돕는다는 것은 지나칠 경우 아이를 언제까지나 아이로 머물게 하는 행위가 되고 만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자기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부모의 친절은 아이를 자기 곁에 두려는 무의식적인 욕망의 발현일 수도 있다.
그림책의 아빠처럼 아이가 힘든 과정을 자기 힘으로 넘어선 순간 안아 줘야 한다. 미리 손을 내미는 부모는 약한 부모이다. 아지만 기다림이란 부모가 얼마나 갖기 힘든 미덕이던가? 이 책이 부모에게 서늘한 깨달음을 주는 부분은 바로 그 지점이다. 성숙한 부모는 아이의 몫을 아이에게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맡기고 지켜봐 주기, 말을 쉽지만 실천하기는 참 어려운 부모의 사랑이다.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까막나라의 임금님은 어둠이 싫어 누군가 불을 가져오기를 원한다. 다들 용기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용감한 불개가 나섰다. 임금님은 불개에게 불만 가져오면 큰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한다. 불개는 불을 뿜는 청룡을 뿌리치고 해에게 달려들어 해를 품지만 뜨거워 견디지 못하고 내뱉고 만다. 하지만 다시 도전, 이번엔 달을 품으려 도전하는 불개. 무섭게 달려드는 백호를 피해 달을 무는 데 성공하지만 달은 너무 차가워 불개의 몸은 꽁꽁 얼어붙고 만다. 이렇게 해와 달을 품어 오는 데는 실패하지만 완전한 실패는 아니다. 앞서 현무가 불개에게 조언을 했듯 진정한 빛은 마음에서 나온다. 불개의 용기 있는 마음은 그 자체로 빛이 되어 까막나라를 환하게 밝힌다.
그런데 반전이 이 ㅆ다. 두려운 신하들은 불개를 모함한다. 임금님은 자신이 한 약속도 잊어버리고 불개를 굴궐 밖으로 끌고 나가 땅으로 내던지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주작이 와서 불개를 구해 준다. 이제 불개는 밝은 나라에서 살고, 까막나라는 계속 어둠에 머문다.
임금님은 약속을 어기고 용감한 불개를 버렸다. 아이들은 불개처럼 용기를 갖길 원한다. 그런데 용기는 한편으로 두려움을 자극한다. '부모는 용기를 갖고 도전하라고 하지만 막상 모험을 하면 나를 버리지 않을까?' 실제로 아이들의 작은 도전이 실패로 끝나는 순간 부모들은 아이에게 잔소리를 퍼붓는다. 도전하라고 말하지만 실패를 용납하지는 않는다. 이런 부모들이 바라는 도전은 진자 도전이 아니다. 영원히 부모가 바라는대로 곁에 남아 부모의 기대를 채우기 바랄 뿐, 아이가 실패 속에서 강해져 자기만의 빛을 갖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그림책은 그런 아이들의 두려움을 달래준다. 비록 부모는 자기를 버릴지 몰라도 끝은 아니다. 현무와 주작이 자신을 밝은 나라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곳에서 사랑받을 수 있다. 아이들은 이 책의 해피앤딩을 즐거워하며 보고 도 보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에서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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