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해_허은미
아이들의 삶은 행복한가? 아이들의 삶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 부모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요즘의 아이들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의 삶이 행복한 적은 유사 이래로 없었다. 아이들은 약자이다. 자신의 운명을 어른들에게 기대야만 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기엔 아직 약하다. 그러니 불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자기 존재가 타인에 의해 좌우되고 스스로 무능하다고 느낄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우울 아니면 현실도피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불쾌한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야단맞은 것이든 자신의 실수든 금방 잊는다. 또 작은 일에도 쉽게 즐거워하고 유쾌한 것에 빨리 빠져든다. 이런 속성은 아이들이 우울감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유전자의 배려이다. 그렇지 못했다면 인간 종은 이미 진화 과정에서 사라졌을지 모른다.
아이는 자기 방에서 땅을 판다. 땅을 파서 안으로 깊이 들어간다. 이는 자기 마음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아이에 대한 상징이다. 어두운 당속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세계에 들어온 아이는 덜컥 겁이 난다. '내가 없으면 내가 했던 일들은 누가 할까? 엄마, 아빠가 나를 걱정하지 않을까?'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이 버려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말할 수 없다. 원래 진정 두려운 것은 걱정조차 할 수 없는 법. 그래서 아이는 자신의 걱정을 뒤집는다. 애초의 두려움은 가족이 나를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내가 버릴까 봐 가족이 두려워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다.
'내가 가족을 버릴까봐 식구들이 두려워할 거야. 그럼 안타까워 어떡하지?' 아이는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집에 돌아와 준다. 주황색 실의 한쪽 끝을 집에 묶어 두고 출발했기에 돌아오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외친다. 이젠 그러지 말라고, 내 마음을 알아 달라고, 한 번만 더 알아주지 않으면 이번에는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할 거라고.
부모들은 자신이 아이를 수없이 용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더 많이 용서하는 쪽은 아이들이다. 불안하기에, 인정받고 싶기에 부모를 용서하고 부모를 받아들인다.
아쉬운 것은 부모의 태도이다. 아이들의 수용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조금만 저항하면 떼를 부린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받아들이느라 자기의 많은 욕구를 포기해야 하는 아이의 마음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런 대접을 받다 보니 아이 역시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타인을 존중하지 못한다. 그리고 부모 역시 무서워는 할지언정 존중하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된다. 이래서야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일까? 이 책은 이처럼 무거운 질문을 너무나도 유쾌하게 던지고 있다.
한편 이 그림책은 부모들에게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 겉다르고 속 다른 부모들의 모습이 아이의 눈높이에서 생생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 앞에선 어른이지만 여전히 한계를 지닌 한 인간일 뿐이다. 다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아이에게만 손가락질하는 것이 문제다. 그림책이 우리의 얼굴을 뜨겁게 할 때 자신에게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같이 잘해 보자고 웃을 수 있는 부모라면 괜찮은 부모이다. 어른인 척하며 아이만 손가락질하는 부모를 용서하는 것은 어이없게도 아이들이다.
육아로 힘든 부모님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이 글은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에서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24432&start=pnaver_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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