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상징_똥
아이들은 왜 '똥' 이야기만 해도 자지러질까? 아이들의 웃음을 빨리 자아내야 한다면 필살기가 있다. 동과 방귀와 같은 지저분한 이야기다. 어른들은 손사래를 친다. 지저분한 동 이야기를 왜 하고 또 하는 걸까.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어처구니없기까지 하다. 어른들 눈으로 아이들 세계를 보면 이해 불가능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 으뜸은 똥에 대한 열광이 아닐까 싶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오랜만에 두더지가 땅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의 머리에 누군가 똥을 싸고 사라진다. 두더지는 화가 나서 똥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비둘기와 말, 토끼와 염소, 소와 돼지를 찾아갔지만 이들은 자기 똥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침내 정육점 집 뚱뚱보 개 한스의 짓임을 안 두더지. 한스의 머리에 작고 까만 똥을 한 점 누고 땅속으로 사라진다. 통쾌한 복수심이다.
이 짧은 책은 아이들의 자아 선언이다. 모두가 다 자기 것이 있듯 나는 내 것이 있고, 내게 함부로 하면 나도 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고 거창한 복수도 아니다. 복수를 가장한 권력 행사도 아니다. 그저 난 내 것이 있음을 드러내는 정도다. 두더지에게 똥은 자기를 더럽히는 존재인 동시에 자기가 누군지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남의 똥은 남의 똥이다. 남의 똥을 머리에 이고 다닐 수는 없다. 나도 보잘것없지만 내 똥을 쌀 수 있다. 무언가를 만들고 보여 줄 수 있다. 이렇게 똥을 자기를, 자기가 만든 것을 상징한다. 내 머리에 똥을 싸고 달아난 사람의 머리에 나도 내 똥을 남기고 싶다. 그래서 나도 그와 똑같은 능력을 지닌 존재임을 보여 주고 싶다.
아이들은 눈이 있지만 다 보지 못한다. 작음 눈속임에도 쉽게 넘어가고, 농담 삼아 한 말에도 불끈한다. 어른들 세계에 빼꼼 고개를 내밀면 '쪼끄만 녀석이!' 하며 무시당한다. 그래도 대놓고 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아무리 아이라지만 내 생각이 있고 무시받으면 되갚고 싶다. 내 머리에 누가 똥을 쌌다니! 참을 수 없다.
강아지똥
비 오는 흙길,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아름다운 장면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고 떼를 쓴다. 하지만 아이가 자기 존재를 인정받으려면 민들레꽃처럼 성장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계속 강아지똥에 머물면 미래는 없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현재의 나를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현재에 머물려고 하면 미래는 오지 않는다. 강아찌똥은 깨달았다. 내 존재가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계속 성숙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 강아지똥은 민들레꽃을 꼭 껴안는다. 강아지똥은 곧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민들레꽃이 되어 멀리, 저 멀리 날아갈 것이다.
책의 시작에서 똥은 더러운 것, 버림 받은 것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것은 남의 시선일 뿐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똥이 더럽기는커녕 있는 그대로 가치 있는 존재이며, 결코 보잘것없지 않다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이 메시지는 아이들의 마음에 큰 위로를 준다. 아이들은 늘 자신이 별것 아닌 존재,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취급받지 않을까 불안하기 대문이다. 부모는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고, 언제 사랑을 거둬 갈지 모른다. 자기는 이 모습 그대로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처럼 아이들의 마음에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고, 자기를 욕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이 마음은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아이가 작은 실패를 경험하거나, 아이를 옆에서 지켜 주는 사람이 없을 때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서 강아지동에게는 자신을 소중히 생각해 주는 민들레꽃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필요하고 친구가 필요하다. 사실 누구나 내면에 강아지동은 물론 민들레꽃도 함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그러기에 손을 잡아 주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이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건네는 바로 그런 손길이다.
이 글은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에서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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