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역사_매튜 페리와 일본
미국 준장 매튜 페리(1794년-1858년)는 1853년 군함 네 척을 이끌고 도쿄만에 닻을 내렸다. 그곳에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땅이었다. 미국 원정대가 접한 일본은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19세기 초반 유럽과 미국은 급속도로 산업화되고 있었지만 일본은 고립된 섬나라로 남아 있었다. 서양인들에게는 탐험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다. 막부와 봉건적 사무라이 제도의 지배를 받는 일본인들은 매튜 페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외국인들과 극도로 제한적인 접촉만 허용되었었다.
미국의 교역 범위를 확대하고 싶었던 밀러드 필모어 대통령은 일본막부를 위협해서 무역을 허용하도록 하기 위해 페리와 함대를 파견했다. 일본은 미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고, 곧이어 다른 서양 국가들과도 비슷한 조약을 체결했다.
개항을 꺼려했던 일본이지만 일단 개항을 허용하자 열정적으로 현대화를 실시했다. 50년 사이에 중세의 섬나라가 주요 산업 강국으로 탈바꿈했다. 전례 없는 비약적 발전을 이루면서 일본은 군사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여러 서양 강국들을 따라잡았고 결국에는 그들을 능가했다. 20세기 초 일본은 유럽 강대국 중 하나인 러시아 제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페리는 오랫동안 해적과 노예 상인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온 노련한 해군이었으며 영국과 벌인 1812년 전쟁에도 참전했었다. 페리의 원정대는 일본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번영국가 중 하나로 변모시킨 일련의 사건들을 성공시키며 유명해졌다. 하지만 그가 일본에 남긴 족적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많은 일본인들은 서양세력이 강제로 일본을 변화시킨 굴욕적인 방식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
페리는 로드아일랜드 뉴포트 출신이다. 뉴포트 시는 페리의 항해를 기념하기 위해 흑선 페스티벌을 매년 열고 있다. 흑선은 일본인들이 페리의 함선을 가리켜 부르던 이름이다.
페리의 원정대가 사용했던 미국 국가는 따로 보관되어 있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일본이 USS 미주리 전함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할 때 게양되었다.
페리의 형 올리버 해저드 페리도 영국과 벌인 1812년 전쟁에 해군 사령관으로 참전했다. 그는 승리를 거둔 후 "우리는 적을 만나 교전했다. 그리고 승리했다."라고 승전보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참고자료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수업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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