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역사_베스트팔렌 조약
1648년 겨울 30년 동안의 전쟁과 황폐화에 지친 유럽 주요 국가들은 평화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독일의 베스트팔렌 지방에서 회의를 열었다. 30년 전쟁은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 사이 종교 분쟁으로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베스트팔렌에서 유럽 강대국들은 더 이상 종교 문제로 싸우지 말자고 합의했다. 그들은 서로 각자 종교를 선택하고 외교정책을 결정하기로 동의했다. 경쟁 관계에 있는 유럽 군주들은 더 이상 자국이 선택한 기독교 교파를 이웃 국가에 강요하지 않았다.
베스트 팔렌 조약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까지 외교 정책의 지침이 되는 국권에 관한 원칙을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1648년 이전까지 독일의 여러 군주들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외교 문제에 대해 보고했다. 그러나 여러 사안 중에서도 특히 종교 문제와 관련해서는 최종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즉 지역의 군주에게 있는지 황제에게 있는지 명백히 정해지지 않았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멀리 있는 황제가 아닌 독일 각 지역 군주에게 주권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권한이 거의 사라진 신성로마제국은 서기 800년 샤를마뉴 대제가 신성로마제국 초대 황제로서 대관식을 치른 지 1000여 년이 지난 1806년 결국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국가 주권 개념은 종교 분쟁을 종결시켰고 유럽을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유럽 군주들은 신이 아닌 다른 문제에서 싸울 구실을 찾았다. 어떤 비평가들은 베스트팔렌 조약이 각국의 국경선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대적인 결정권을 부여함으로써 국가 간 경쟁구도를 더욱 강화시키고 유럽의 분열을 조장했다고 주장한다. 국권이라는 개념이 각 국가 지도자들에게 다른 국가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인권 말살을 무시할 수 있는 변명거리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국권의 개념은 오늘날 국제 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베스트팔렌 조약 협상은 실제로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한 장소에는 신교도들이 참석했고 다른 장소에는 가톨릭교도들이 참석했다. 양측이 서로 직접 만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 정권을 독일의 제3제국이라 칭했다. 그가 생각하는 제1제국은 신성로마제국이고 제 2제국은 1871년부터 1918년까지 역사가 짧았던, 카이저(독일 황제)가 이끄는 군주국이었다.
참고자료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수업 365>
2024.12.25 - [교양수업365]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33 종교_막달라 마리아
2024.12.24 - [교양수업365]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32 철학_선험적 지식
2024.12.23 - [교양수업365] - [1일 1페이지, 교양수업365]131 음악_하이든의 런던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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